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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약 개발 나선 제약사들… ‘뇌혈관장벽을 뚫어라’

정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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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약사들이 암·비만 다음 먹거리로 치매·파킨슨병 신약에 주목하고 있다. 핵심은 뇌-혈관장벽(BBB)을 투과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으로, 실제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은 해당 기술을 확보한 바이오기업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로슈 ‘트론티네맙’, 임상서 치매 개선 효과 확인
1일 신한투자증권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로슈는 지난 4월 국제 알츠하이머·파킨슨병 콘퍼런스에서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항체 신약 '트론티네맙'의 임상 1b/2a상 연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114명 대상으로 28주간 약물을 투여한 결과, 81%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의 기준인 '센틸로이드' 수치가 24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성분명 도나네맙)'를 24주간 투여한 환자의 데이터인 40% 대비 높은 수치다.

대표적인 부작용인 'ARIA(아밀로이드 영상 이상)' 또한 키썬라 대비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ARIA-E(뇌에 MRI 스캔을 했을 때 뇌부종이 나타나는 현상) 발생률은 트론티네맙 0%, 키썬라 24%였으며, ARIA-H(뇌에 MRI 스캔을 했을 때 뇌출혈이 나타나는 현상)는 트론티네맙 2.6%, 키썬라 31.4%였다. 로슈는 오는 27~31일 열리는 알츠하이머협회 국제 콘퍼런스(AAIC 2025)에서 추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촘촘한 ‘혈액뇌장벽’ 통과할 수 있어
트론티네맙이 임상시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낸 이유는 약물이 '혈액뇌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어서다. 혈액뇌장벽은 뇌세포를 둘러싸면서 뇌혈관을 통해 외부 물질이 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저분자 의약품(경구제)도 진입하기 어려울 만큼 촘촘하다. 혈액뇌장벽을 통과하는 방안 중 하나로는 약물 용량을 늘리는 방법이 있으나, 부작용 우려가 있어 쉽지 않다.

이에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은 용량을 늘리지 않더라도 약이 혈액뇌장벽을 통과해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중요하나, 그동안 개발된 의약품들은 분자가 큰 항체 의약품이기 때문에 혈액뇌장벽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트론티네맙 또한 간테네루맙이 임상에서 실패하자 자사의 혈액뇌장벽 투과 기술인 '브레인셔틀'을 붙여 다시 개발한 약이다.


신한투자증권 엄민용 애널리스트는 "트론티네맙은 항체 치료제의 뇌 투과율과 유효성, 부작용 개선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고 밝혔다.

◇사노피, 애브비 등 글로벌 제약사 개발 경쟁 中
이처럼 혈액뇌장벽 투과 기술이 약물의 효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해당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거나, 전략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고 있다.

2022년 1월 국내 바이오기업 에이비엘바이오가 사노피에 뇌 투과 기술을 이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뇌 투과 플랫폼 '그랩바디-B'를 보유한 기업으로, 당시 사노피와 최대 16억달러에 해당 기술을 적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ABL301'을 기술 이전했다. 회사는 올해 중순 ABL301의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에이비엘바이오는 올해 4월 GSK와 그랩바디-B 기술을 적용한 다수의 치료제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바이오기업 알리아다 테라퓨틱스의 뇌 투과 기술을 확보한 애브비도 주목해 볼만하다. 애브비는 작년 10월 알리아다를 14억달러(한화 약 2조원)에 인수해 뇌 투과 플랫폼 'MODEL'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개발 중인 신약이 임상 1상 단계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ALIA-1758'이다.

릴리, 제넨텍, 아스텔라스 등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한 상가모 테라퓨틱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상가모는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를 기반으로 한 뇌 투과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에이비엘바이오와 기술이 다르나, 한 번의 정맥주사로 뇌 전체에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회사는 작년 8월 제넨텍과의 19억5000만달러(한화 약 2조6500억원) 계약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아스텔라스와 13억달러(한화 약 1조7500억원), 올해 4월 릴리와 14억달러(한화 약 1조9000억원)에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엄민용 애널리스트는 "치매와 파킨슨병은 암과 비만 다음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영역"이라며 "비만은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시장 대부분을 장악 중이기 때문에, 대다수 대형 제약사들은 항암제를 이을 다음 주요 시장으로 퇴행성 뇌질환을 보고 있다"고 했다.